여성들이 9월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Global Day Of Action for Access to Safe and Legal Abortion)을 맞이해 '임신 중단'을 선택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래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출범한 28일 오전, 여성들이 이 자리를 통해 공개한 '임신 중단'과 관련된 경험 이야기.

"저는 성 판매 여성입니다. 누구인지 모르겠는 성 구매자의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출산과 육아를 원치 않았지만, 수술 비용이 없었습니다. 성매매는 성폭력이 아니기 때문에 임신중절 수술비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불안함과 하루하루 바뀌는 저의 신체 상태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저 자신이었습니다.
성 판매 여성들은 성 구매자에 의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기도 합니다. 콘돔을 하지 않으려는 남성들과 '협상'하거나, 요구를 거절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매매 상담소에서는 계속해서 임신 중절에 대한 상담이 늘어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낙태죄는 성 판매 여성들의 몸을 더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국가가 정한 조건을 벗어나,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넌 바이너리(Non-Binary: 자신을 전적으로 여성 혹은 남성 젠더로 정의하지 않는 사람. 여성과 남성의 스펙트럼 사이 어디쯤으로 자신을 정의) 트랜스젠더 입니다.
2011년 초기, 임신중절 수술을 했습니다. 생리할 때마다 디스포리아(dysphoria: 트랜스젠더/젠더퀴어가 정신적 성별 gender와 신체적 성별 sex의 불일치로부터 느끼는 성적 불쾌감)를 느꼈던 저는…저의 임신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큰 혼란을 느꼈고, 제 몸이 제 몸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위에 임신 사실을 알리자 ‘이제 너는 여성으로서 완전한 경험을 한 것’이라는 말도 들었으나…아닙니다. 저는 넌 바이너리입니다. 저는 여성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임신중절 수술을 망설임 없이 택했고 그것은 저의 온전한 결정이었습니다. 언젠가 자궁적출 수술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아예 임신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바람과는 다르게 (수술 후) 가임이 가능한 섹스를 한 뒤에는 늘 임신 공포에 휩싸이곤 합니다. 아무리 콘돔을 써도,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약 임신을 지속하였다면, 저는 죽음을 선택했을지 모릅니다. 임신중절 수술은 저의 목숨을 살리고, 제가 원하는 성별로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낙태죄에 대해 전면 반대합니다."

"저는 1998년에 낙태를 했습니다. 남자친구와 2년간 만나면서, 그의 요구로 늘 콘돔 없이 성관계했고 이로 인해 마음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임신 중절 수술 후 남자친구는 당연히 해야 할 문제를 해치웠다는 반응이었고,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콘돔 없이) 성관계를 요구하였습니다.
임신에 대한 공포, 낙태에 대한 죄책감 모두 저만의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의 남자친구는 자신의 욕구가 우선이라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자만 독박 처벌하는 낙태죄를 시행하는 정부는 이런 책임감 없는 한국 남자와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저의 어머니도 낙태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낙태한 사실을 결혼 후 엄마에게 말씀드렸을 때, 엄마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1975년 3월, 엄마는 임신하신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태몽으로 소 꿈을 꾸었기 때문에, 집에서 낙태를 강요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엄마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사셨습니다. 엄마에게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유가 없었던 것이죠. 가족이라는 이유로, 시부모와 큰 집에서 이래라저래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죄책감은 시부모도, 큰집도, 가족 등 그 누구도 아닌 엄마만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낙태를 할지 말지는, 시부모도 정부도 결정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저 당사자의 문제일 뿐입니다."

"아이 둘을 가진 결혼 5년 차였던 1996년. 10월 23일과 같은 해 12월 20일.. 두 번의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빠듯한 벌이에 전세 대출금 이자를 갚느라, 양쪽 부모님 뒷바라지를 하느라,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는 '보통의 부부' 였습니다. 셋째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남편은 퇴근 후 한밤중에만 들어와 아이들과 잠깐 눈을 맞추고 쉬었지만, 저는 소위 '독박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느라 지치고 또 지친 상태였습니다.
수술을 받았고.. 수술을 받은 지 불과 두 달도 되기 전에 남편이 '이번엔 괜찮다'고 우기면서 피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성관계를 했고.. 저는 또다시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도 체력적으로 약해져 있는 제 몸이 또 한번의 임신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 염려했고, 다른 선택을 고려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독박육아에, 이중노동에, 피임은 신경도 안 쓰는 남편을 둔 모든 기혼 여성을 위하여 낙태죄의 폐지를 요구합니다."
"2012년 12월 18일,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에게 모텔로 끌려가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신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생리가 나오지 않아 산부인과에 갔더니 '임신 4주'라고 하더군요. 망설이지 않고, 임신중단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낙태죄'라는 법이 있어, 수술을 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은 임신중절 수술의 허용 사유에 해당하지만, 제가 먼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폭력 상담소에서 발급받은 상담사실 확인서를 제출했으나, 병원에서는 가해자를 고소하고 고소사실 확인서를 받아와야 한다며 수술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병원에서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는 조건으로 불법 수술을 해주겠다며, 터무니없는 비용을 요구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돈도 없었고.. 안전하고 합법적인 수술을 받을 권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거액을 주면서까지 불법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어렵게 마음먹고 가해자를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고소사실 확인서를 빨리 발급해주지 않았습니다.
'가해자 측은 합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한다' '인공유산을 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고소한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조급해지고, 너무나도 불안해졌습니다.
결국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고 나서야,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임신 주 수가 14주를 지나 있었고, 수술 위험성이나 비용도 임신 초기에 비해 훨씬 커져 있었습니다.
또한, 수술받기 직전에는 '성폭력 피해가 아님이 밝혀질 경우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해야만 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 내가 낙태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인지 따져 묻고 싶었으나.. 당장 내 몸이 인질로 잡혀있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4년 6월 20일, 수술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는 틈틈이 섹스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저는 사실 섹스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컸습니다. 남친의 요구를 미루고 미루던 중, 하루는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고 애무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삽입을 시도했습니다. 저는 '삽입은 안 되고, 질 입구에서 비비기만 하는 건 괜찮다'며 그를 달랬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생리할 때가 되었지만, 생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쿠퍼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임신을 한다'고 했던 성교육에서는 배워본 적 없는 말이었습니다.
(임신을 확인한 후) 제 몸이 제 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준비하던 대학교, 꿈, 부모님, 학교생활 같은 것들이 떠올랐고.. '왜 지금' '왜 사정도 안 했는데..??'와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고등학생 임산부'라는 손가락질과 부모님한테 손 벌려야 한다는 불효, 대학이나 취업 같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못 하게 된다는 걸 감수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저는 낙태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겨우 인터넷을 뒤져서 나온 병원들에 전화해 나이를 얘기하자 '부모님은 아시냐' '부모님 동의 없으면 수술 못 해준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정말정말정말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남자친구와 제가 마련할 수 있는 돈으로는 수술비의 절반도 안 되고.. 병원에서도 부모님 동의를 요구해서..
저는 '당신들 딸이 섹스를 했고, 낙태를 한다'는 사실까지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자친구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남자친구는 임신 사실을 얘기하자 아무렇지도 않게 "헐, 그런 거로도 임신이 돼?"라고 하면서, 제가 낙태를 하겠다고 하자 '알겠다'며 동의해준 게 다였습니다.
낙태에 남자친구의 동의..솔직히 말해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고.. 저는 제가 제 인생에 대한 고민을 통해 얻은 결론을 왜 걔한테 허락받아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제가 고민 끝에 아이를 낳겠다고 했으면 남자친구는, 그리고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청소년 여성을 위해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것은 2016년 3월 24일입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믿을 만한 병원은 어디인지, 수술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등등을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으로 병원을 어렵게 찾아갔습니다.
병원에서 하자는 대로의 수술 방법으로..달라는 대로의 금액을 주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실에 들어가니..수술대 의자와 수술 도구에 바로 전 사람이 수술할 때 묻은 것 같은 피가 보였습니다.
순간, '소독 한번 해달라고 부탁할까?' '애 지우러 온 주제에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할까?' '이런 비위생적인 병원에서 왜 내가 내 돈 주고 수술을 받아야 하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시끄러웠지만, '어렵게 찾은 병원인데 수술 못 하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결국 아무것도 요청하지 못했습니다.
의료진 역시 저에게 수술 방법이나 후유증에 대해서.. 또 어떻게 몸을 관리하고 조심해야 하는지..일반적인 의료과정이라면 당연히 알려줘야 할 부분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수술 후 저는 출혈이 너무 심하고 길어져서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검사를 위해 재방문하라는 병원의 문자를 받고도..불결하고 존중받지 못했던 경험이 떠올라 다시는 그 병원에 가지 못했습니다.
'다른 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나' 했지만, 임신중절은 불법인데 수술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지..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가지 못했습니다.
낙태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저에겐 임신을 중단할 권리만이 아니라 건강을 유지할 기본적인 권리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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