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16일 목요일

‘임신초기낙태’ ‘약물낙태’ ‘원정낙태’ ‘고액낙태’…낙태 단속.ㅠ

프로라이프 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낙태 시술 산부인과를 고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시술을 거부하는 병원이 늘어 낙태 비용이 수십 배 증가하거나 외국으로 원정 낙태를 가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낙태 단속 이후 달라진 풍경을 취재했다.

글 싣는 순서1)원정낙태, 고액 낙태 낙태 단속이 바꾼 풍경
2)20대가 청소년 성 상담소를 찾는 까닭
3)성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10대
“요즘 불법인 거 아시죠? 직접 와서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시라는 말밖에 전화로는 할 수가 없네요.”
가능하단 소리다. 무작정 전화를 돌린 곳만 30여 군데. 가까스로 임신 중절 수술이 가능하다는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포털 사이트 검색으로는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작은 규모의 동네 산부인과였다.
평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병원을 직접 찾았을 때는 손님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수술이 가능한지 물었다. 간호사 두명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몇 개월이에요?” 3개월이라고 하자 일단 초음파 검사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3개월인지 정확한 날짜를 알아야 상담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생이 임신을 했다고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낙태 병원 단속 의지를 밝힌 뒤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가격을 물었다. 현금만 가능하다고 한다. ‘초음파 검사를 해봐야 안다’라면서도 100만원 정도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모자라다고 했다. 200만원 정도 준비하면 되느냐고 재차 묻자 모르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더할수도 있고, 어쨌든 데려오세요.” 최근 단속이 강화돼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말을 덧붙였다.
산부인과 기록이 남느냐는 질문에 한 간호사는 “저희 병원은 아예 기록을 안 남겨요”라고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로 속삭였다. ‘계류 유산’ 등으로 인공임신중절 수술 사유를 조작한다거나 아예 수술 자격이 없는 조산소를 이용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진료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는 병원 얘기는 처음 들었다. 마지막으로 간호사가 속삭였다. “다른 병원은 요즘 잘 안 하려고 해요. 동생 수업 끝나는대로 데려오세요”

‘프로라이프’ 소속 산부인과 의사들이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병원의 동료 의사들을 고발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정부는 낙태신고센터를 만들어 불법 낙태수술 신고를 받고 있다. 임신중절 수술로 유명했던 산부인과 대부분 시술을 거부하고 있다. 불과 3개월 전엔 홈페이지를 통해 문의를 해도 ‘6시간 금식하고 오면 하루만에 된다’라던 병원들이 지금은 ‘불법 낙태는 안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방문했던 병원에 기자임을 밝히고 전화를 하자, “우린 원래부터 안하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라며 황급히 끊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에는 낙태 수술이 가능한 곳을 묻는 문의가 빗발친다. 전화로 물으면 안한다고 해도 직접 가면 해준다는 소문에 서울 내 작은 병원들을 찾아다녔다. 대개 ‘중절수술’ 단어만 꺼내도 안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까스로 찾은 병원 한 곳은 여전히 낙태 논란이 불거지기 전의 가격을 받고 있었다. 한눈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곳이었다. 3주든 3개월이든 35만원으로 수술비는 같았다.
초음파 검사비 등을 합치면 40만원 대다. 단, 조건이 있었다. 남자와 같이 와야 한다는 것. 남편이든 남자친구든 동의서 사인을 위해 반드시 같이 와야 한다고 했다. 보호자로 여자 친구나 가족도 안 되고 오로지 ‘그 남자’와 같이 와야 한다고 했다. 수술 시간은 10여분. 이것저것 다해도 1시간30분 정도면 되고 다음날 바로 출근이 가능하다고 했다.
낙태가 가능하다는 병원은 대체로 한산했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동네 작은 병원은 출산을 안 하는 곳도 많아 낙태를 거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출산에 관한 것보다 ‘이쁜이 수술, 레이저 질성형’같은 홍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병원 경영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409명 중 297명(72%)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개원의(196명)의 경우 83%가 동의했다.  
수술을 거부하는 병원이 늘다보니 서울에 사는 사람은 지방 병원을, 지방 사람은 서울 병원을 문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원정낙태’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국내에서 찾기를 포기하고 중국과 일본처럼 낙태가 합법인 나라로 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아이치현의 한 산부인과에 문의한 결과 한국인이어도 방문 즉시 수술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9주~10주 정도까지는 총 15만엔 정도(약 160만원)가 든다고 했다. 한국인 의사는 없지만 간단한 일본어가 되면 가능하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중국 청도의 한 산부인과는 보증금 2000위안(약 33만원)이 필요하다. 수술비는 800~1100위안(약 18만원) 정도고 3일 이상은 입원을 해야 한다. 퇴원할 때 보증금을 돌려주는 독특한 시스템의 이 병원에는 한국인 의사가 있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서울여성의전화’ 란희 간사는 “도저히 낳을 수 없는 환경의 사람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낳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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